2009년 02월 15일
칠레 와인의 아버지 토레스

겨울을 눈앞에 둔 절기인데도 무척이나 포근한 새벽이었다. 외국에서 돌아온 아들과 함께 첫 비행기편으로 조상의 산소가 있는 고향을 찾았다. 안개가 짙어서 어딘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마을을 지나고 저수지를 돌아 산에 다다랐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풍진에 찌든 몸을 씻겨주는 듯했다. 연방 숨을 내쉬며 자연의 신선함으로 마음까지 가다듬게 됐다. 준비해 간 과일과 과자에 와인을 한 잔씩 따라놓았다.
여기에 엎드리려고 하니 새삼 옛정이 스며 오른다. 잡풀 몇 가지를 휘어 뽑고, 잘 드시라며 무덤가에 술을 뿌렸다. 가슴이 트이고 몸이 가뿐해졌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멀리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아래 내가 살았던 동네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니 그저 미소만 짓는다. 저녁에 와인을 두어 잔 마신 후 책을 집어들었다. <겁 많은 자의 용기>란 자서전이었다. 800쪽에 이르는 장문이었지만 이틀 만에 완독했다.
저자가 친인척인데다 딸의 주례를 서 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회의 올바름을 평생 추구하신 분이기에 정신을 가다듬고 정독했다. 그중 한 에피소드가 우리네의 단면을 알려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저자도 동행했는데 만찬장에서 당시 한국의 한 장관이 수상자의 동생과 동석했다. 그 동생이 빵에 바를 잼이 필요하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관이 일어나 어디론가 가서 잼을 구해 왔다고 한다. 저자는 장관이 나랏일을 해야지 잼을 가지러 일어서는 게 어디 있느냐며 바른 말을 했더니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절 몇 번씩이나 높은 자리를 제의받았지만 모두 물리치고, 측근 정치의 폐해 같은 쓴소리만 해서 집권층의 눈 밖에 난 저자다. 책의 뒤표지를 보니 시인 고은 씨가 ‘선, 정직, 의리 그리고 공공에 대한 사명감은 선생의 가슴에 언제나 불을 밝혔다’는 글을 남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공공기관에서 일했던 옛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향수를 살리는 데 명품 와인보다는 칠레 와인이 제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만소 데 벨라스코(Manso De Velasco) 1997년산을 잔에 따랐다. 칠레 와인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스페인의 미겔 토레스(Miguel Torres)가 칠레로 건너 가 만든 와인이다. 만소 데 벨라스코는 토레스가 생산되는 칠레의 와인 생산지 쿠리코 시를 세운 스페인 총독의 이름이다. 10년이 지난 신세계 와인인데도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여전히 맛있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같은 시기 와인과 비견될 만큼 잘 숙성돼 있었다. 입에 대자마자 스르르 목젖을 적시며 빨려가는 듯했다. 칠레 와인을 논할 때 어떤 와이너리도 토레스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칠레 와인산업에 대한 토레스의 공헌도가 높다.
토레스는 79년 사회주의 시절 칠레에 진출했다가 좌절한 바 있다. 하지만 10년 후 다시 진출해 낙후됐던 칠레 와인의 현대화에 길잡이 역할을 했다. 토레스에 이어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 외국 와인 자본과 기술이 잇따라 칠레에 상륙했다. 그 결과 얼마 전 미국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선정한 올해 1위 와인에 칠레 와인인 클로 아팔타 2005년산이 오를 수 있었다.
좋은 씨앗을 뿌린 덕에 세계 1등 와인이 칠레에서도 나오게 된 것이다. 호주 펜폴즈의 그랜지가 90년대 이 잡지에서 1위에 오른 이후 호주 와인이 글로벌화됐듯, 세계 와인 평준화의 시기가 예상보다 빨리 왔다는 생각이다. 만소 데 벨라스코의 숙성된 맛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토레스 같은 선각자들이 필요해 보인다.
# by | 2009/02/15 23:07 | forbes | 트랙백





